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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obody

'JOY Continue' Game Dev Report

최종 수정일: 2020년 6월 30일

'조이컨티뉴' 게임 개발 보고서


(게임 티저 영상)


(내가 만든 게임 로고)


3학년으로 편입한 나는 첫 학기부터 무간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외부인이었던 나는 졸업반의 인력 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팀으로서 같이 할 수 있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판단 할 수 없었다. 전공이 모델러기 때문에 적당히 아무 3D게임을 기획하는 팀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오로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 분수에 안 맞는 지나친 욕심을 가진 사람들. 졸업만 하면 되고 무슨 게임을 만드는지는 관심 없는 사람들. 구현할 능력이 없으니 기획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 무지몽매한 인간군상들이 한 데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문제해결 수업을 담당하신 교수님의 강의 자료 중 실패하는 팀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우리 팀의 현 상태와 꼭 빼닮았다는 것을 수업 진도가 나갈수록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혼돈 속에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크툴루가 현세에 강림해서 게임을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코즈믹호러 단편 소설을 읽었을 때 남는 여운과 비슷한 느낌이다.

3D 아트팀에서 나를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심지어 기획자의 오더에 따라 만든 리소스들은 다른 팀원들의 불만과 요청으로 인해 기획이 바뀌자 재사용의 여지 없이 전부 폐기 처분 됬으며 매주 화요일 마다 진행되는 교수님들의 크리틱은 처음에는 우리 팀 전체의 멘탈을 뒤흔들어 놨지만 이윽고 우리에게 소리치고 화내는 교수님들의 반응에 대해 나는 무덤덤 해져버렸다.


실패에 적응하게 되고 무심하게 반응하는 것이 개발하며 겪었던 것 중 가장 무서운 일이다. 무능하고 게으른 인간들이 권한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체험했다. 팀 전체에 팽배한 패배주의와 매너리즘. 팀원들의 모습을 보면 자기가 왜 혼나는지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이 원인인지 문제 인식이 우선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가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조차 알지 못한다.


혼자서 이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일까지 대신 맡아서 수행 했으나 그들에게서 돌아온 것은 사태에 대한 현실 부정과 책임 회피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실행했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일이 나에게 떠넘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발표 전날 맡은 일을 다 하지 않고 잠수해 버리는 파렴치한 인간도 생겼다.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뭐든지 폭파 시키는 마이클 베이의 길을.


이전 팀장에게 지금 팀은 가망이 없으며, 새로운 시작을 할 때가 왔다는 것을 통보했다. 팀을 해체시킬 것을 종용했고 나와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을 데리고 살 길을 찾아 다른 개발팀에 연락을 보냈다. (그때 같이 나온 프로그래머와 기획자는 클라우디아 개발 팀에 들어가서 이후 GIGDC 대상을 수상 받는다)


동료들 모두가 다른 개발팀에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고 홀로 남은 나는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은 팀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들의 사정은 나와 같은 처지였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진전이 없었고 프로젝트는 취소되고 팀까지 반파된 그들. 다른 개발팀 사람들은 그들과 나를 보며 위로는 커녕 수군거릴 뿐이었다. 거대한 인간 불신을 얻게 된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똑같은 상황에 처한 오직 나 뿐이었다. 처음 그 팀에 찾아가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봤을 때 그들의 얼굴 속에는 한 점 거짓도 없었고 그들에겐 어떤 문제도 없음을 확신했다. 나를 믿었고 그들을 믿었고 우리가 해낼 것이라는 걸 믿었다.


(자랑스런 우리 팀원들)


우리의 새로운 팀 이름은 리벤져 Revenger. 복수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응징할 것이다. 이 복수극엔 대사는 필요 없다. 서든어택2 사업부 직원의 발언대로 누가 허접한지 오직 결과가 알려줄 것이다.


새로운 개발 팀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그날 저녁, 개발실 문 앞 바닥에서 참새를 보았다. 무슨 일인지 동물 친구는 내가 가까이 다가와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눈만 끔뻑이며 세상 저편 멀리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나처럼 모자란 친구 구나 싶어 동정심이 들었다. 조심스레 움켜잡아 학교 바로 옆 숲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우리 리벤져 팀 AD님도 새로 팀을 결성한 첫날에 새를 잡았다. 졸업작품 개발실의 누구도 우리를 동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행운만큼은 우리 편이었다.


우리는 절벽 끄트머리에 몰려있었다. 6월말에 있는 기말 발표 일정에 맞춰야 하는데 5월 중순에 취소된 프로젝트. 간신히 팀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에 미약한 내가 더해진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실제 개발 가능한 시간은 4주 남짓 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엄청나게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우리는 영화 주인공들처럼 이 말도 안되는 스케줄을 파란만장하게 소화 해내야 했다.


다음주 크리틱 시간까지 프로토타입을 완성해서 교수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새로운 팀의 개발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 우리들은 매우 단순한 일주일짜리 마일스톤을 계획했다.



(당시 PD였던 오지후님의 초간단 기획서)


팀에 들어간 당일, 기획과 컨셉 아트가 반나절 안에 결정되었고 나머지 반나절은 파일 규약을 정하고 리소스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팀 섹션을 이사하고 개인 데스크탑을 세팅하고 기획서를 읽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기획이 단순했다. 일 분 일 초가 시급한 상황이라 나는 내가 가장 도움이 될 일을 맡기로 했다. 비록 나는 캐릭터 모델러 였지만 과감하게 포기하고 작업량이 훨씬 많았던 배경 모델링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프로그래머 감성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말살’적인 기획서)


어느정도 정해진 게임의 대략적인 컨셉은 이러했다. 캐주얼 그래픽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단 한대만 맞아도 사망하는 자비 없는 하드코어 소울 라이크 어드벤쳐. 개인적으로 이런 반전 매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만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실드를 충전하여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건의했다.



(배경/캐릭터 모델링을 위해서 AD님이 그려준 원화와 레퍼런스 모음)


AD님도 자신의 본업인 배경 모델링을 어느정도 접어두고 대신 프로젝트를 위해 원화를 그려 주셨다. 기획자가 없는 상황에서 PD가 초안을 쓰고 의견 교환을 통해 다른 팀원들이 덧붙여 나갔으며 심지어 조이 캐릭터 모델링은 애니메이터님이 더미로 만들었던걸 그대로 썼다. 이처럼 팀원 모두가 자존심과 욕심을 버리고 오직 목표 달성을 위해서 희생하고 서로 돕는 것이었다.


또한 서로 모르는 부분을 도와주었다. 나는 그래픽 팀원들이 배워본 적 없는 외부 툴들을 알려주고 그래픽 데이터 관리에 대해 알려주어 작업 효율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고 반대로 팀원들은 언리얼 엔진을 다뤄본 적 없던 나에게 기본적인 조작법을 숙지 시켜줬다.


배경 모델링 작업 당시 내가 집중한 부분은 아트 최적화였는데 게임 전체 용량의 80퍼센트 이상은 그래픽 리소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텍스쳐 맵의 크기는 2k~4k정도로 비교적 자유롭게 쓰되 드로우 콜을 줄이려 수동으로 아틀라스를 만들었다. 어떤 오브젝트가 어떤 UV좌표를 사용하는지 같이 작업하는 AD님이 바로 알아 볼 수 있도록 오브젝트 네이밍은 물론 고유번호를 부여했으며 폴리곤 형태는 다르지만 텍스쳐를 재사용 할 수 있는 오브젝트가 매우 많았기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프랍들 또한 하나의 텍스쳐 아틀라스에 모아서 정리 하였다.



(테스트 빌드 버전. 더미 몬스터와 UI등 많은 부분이 지금과 다르다)


우리는 단 1주만에 크리틱 시간에서 이미 게임의 핵심이 다 구현된 테스트 빌드 파일을 선보였다. 일주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고 주말은 쉬었다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발표 PPT를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허황된 포장 문구는 다 떼어 버리고 크리틱 시간에 직접 교수님들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게 준비하였다.


교수님들의 반응은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다. 10주간의 크리틱에서 처음으로 그들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성공이었다. 그 이후 크리틱 시간은 이미 교수님들의 두터운 신뢰와 기대를 받아 우리 팀에서 자체적으로 알아서 중대사를 결정 하도록 믿고 맡겼으며 자유 방임하였다. 이전의 모든 고통을 감내한 지금은 마침내 우리가 받아야할 대우를 받게 되었다.


(배경 작업 노가다를 줄이기 위해 작성한 블루프린트)


첫 크리틱을 무사히 넘긴 나와 AD님의 다음 마일스톤은 스테이지 분량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포탈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몇 개의 섬을 수동으로 블록을 추가하여 맵을 구성하는 일은 온전히 시간 문제였다.


바닥 타일을 일일히 하나씩 배치하는 노가다에 손목이 너무 아프고 터널증후군이 걱정된 나는 어떻게든 노가다를 줄이고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작업 도중에 서포터였던 프로그래머 박정석님에게 기술 지원을 부탁하여 바닥 타일 큐브를 랜덤한 각도로 회전 시킬 수 있는 블루 프린트를 작성하였다. 이 절차를 통해 작업시간을 예상했던 시간의 절반 정도로 단축 할 수 있었다.


다음은 조이가 상대할 적들의 종류를 늘리는 문제였다. 개발 초기에는 위 자료화면의 보라색 메카 토끼 친구 밖에 없었다. 게임에 어울리지 않고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메카 디자인을 폐기했고 여러가지 공격 패턴을 가졌으며 장난감 세계에 어울리는 적들을 추가해야 했다.


(크리처 텍스처 아틀라스)


텍스쳐를 제작 할 때 이렇게 비슷한 형태의 적이라면 언제든 UV위치만 수정하면 디자인이 바뀔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론상으로는 UV를 조립해서 커스터마이징된 완전히 새로운 적을 만들 수 있었다.


(모델링한 크리처들 뷰포트 샷)


원화가 귀여우니 모델링도 예쁘게 잘 뽑혔다. 카툰렌더링으로 보면 한 층 더 귀여워진다. 크리처도 주인공 캐릭터도 배경도 나왔다. 이제 우리 게임에 없는 것은 UI 뿐이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프로그래머 두 명 모델러 두 명 애니메이터 두 명 이라는 기괴한 우리 팀의 조합에서 나는 UI를 떠맡게 되버렸다. 시각디자인과를 다녔던 경험을 살려 ‘오버워치’를 레퍼런스로 삼아 제작했지만 처음 해보는 일이라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현업자분들과 교수님들에게 UI를 지적 받진 않아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번 졸업작품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이 많다. 소규모 팀의 가장 큰 장점은 의사결정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며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간다는 것에 있다. 이전 팀에서는 회의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하루 종일 지겹도록 회의만 하다가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모두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쓸모 없는 말을 하는 시간은 없었고 대부분이 작업 시간이었다. 게임을 만드는 팀원 숫자에 정비례해서 게임의 퀄리티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팀 인력 개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것이다. 이전 프로젝트와는 다른 경이로운 작업 진행 속도에 남들 몰래 눈물 흘렸다. 원래 이렇게 흘러 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학기 초부터 그들과 함께 작업했다면 얼마나 대단한 결과물이 나왔을지 상상하곤 했지만 한 번 망해봐서 얻은 교훈으로 이렇게 나와 그들이 성장한 것이라 생각한다.


기말 발표에서 현업자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이후 우리가 만든 게임은 NexonGT 우수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기말 발표 이후는 사실상 폴리싱 작업뿐이었다. 발표 이후 방학 동안 팀원들을 모두 좋은 회사로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아 보고서를 쓰는 지금도 자잘한 작업만 하고 있다. 편입생으로 와서 학점 문제로 인해 졸업이 불가능해 취업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내년쯤 나도 곧 그들을 뒤따라갈 것이다. 게임개발자로서의 본질을 일깨워준 경험을 하게 해준 우리 팀원들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보고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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